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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0/03/25 2010/03/25 목요일 - 날씨 : 쌀쌀함 (4)
  2. 2010/03/04 위그노와 경제발전 (2)
  3. 2010/03/02 2009/03/02 화요일 - 날씨 : 비온뒤 갬

 행복이라는 게 무엇일까? 항상 이런 일이 있을 때면, 왜 나는 행복하지 못할까라고 반문한다.
왜 나는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지 못했을까,
왜 나는 평범하게 사람들을 대하지 못할까,
왜 나는..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나를 물어뜯는다.
그리고는 마지막에는 항상 결론을 내린다.
"평범하기 때문에 평범한 삶을 살 수 없다."
세상은 적당히 사는 사람에게 평범한 환경을 제공해주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평범한 내 능력을 높이기 위해서 자신의 건강을 깍아먹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막상 현재의 내 능력이 그 만큼되지 못하기에
다시 갈피를 잡지 못한 채로 방황하게 되는 것이다.

요즘에는 나이가 조금 들어서 인지 이런 상황에서 자신을 찾아가고있다.
그 방황의 소용돌이 내에서 나 자신을 찾으려 애를 쓰고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 대견(?)해 하면서..
이제 독립의 꿈도 멀지 않았다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가슴 벅참과 한편으로는 황량한 마음이 동시에 찾아온다.
얼마나 오랜 시간 이를 꿈꿔왔는지.
하지만 한 편으로는 또 걱정이 된다.
마치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직장인의 마음과 같이, 익숙하지 않는 곳을 찾는 여행자의 마음과 같이.

즐거움에 대해서 조금씩 구체적으로 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행복의 참된 가치를 느껴보고 싶다.
시간은 천천히 흐르지 않는다.
그 급한 시간의 물결속에서 정신을 잃지 않고 방황하지 않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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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cogist
위그노는 누구인가? 요즘 읽고 '경제강대국 경제흥망사 1500-1900'를 읽으면서 잘 모르는 용어가 나와 정리해보았다.
위그노(Huguenot) 프랑스의 개신교 신자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칼뱅주의를 추종한 프랑스 개신교 신자들은 스위스 주네브에서 세력을 규합하는데, 후에 이들을 프라이부르크, 베른, 제네바의 동맹이라는 뜻으로 위그노라고 불렀다. 1562년 위그노 전쟁, 1572년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 학살 등으로 로마 가톨릭 교도들과 갈등을 겪었으며, 교리적으로도 혼란을 겪었다. 부의 정당한 축적을 인정한 칼뱅주의의 특징상 주로 상공업자 중에서 신도가 많았다. 루이 14세가 낭트 칙령을 폐기하자, 수많은 위그노들이 네덜란드, 영국, 프로이센 등지로 망명하였다. 일부는 미국 (현재의 뉴욕과 캐롤라이나지역)으로 건너가기도 했다.
(출처 : 위키백과 http://ko.wikipedia.org/wiki/%EC%9C%84%EA%B7%B8%EB%85%B8#cite_note-0)


위그노에 대한 지식이 없어 어떤 사람들이었을지 떠오르지 않아, 기사를 보니 다음과 같은 평가가 있었다.
위그노는 당대 최고의 기술자이자 엔지니어들이었다. 신교의 상공업 숭상주의 덕분에 위그노들은 일찌감치 제철·염료·화학 등 하이테크 분야에서 진면목을 발휘했다. 정치적인 박해를 피해 유럽 곳곳에 퍼진 위그노들 덕분에 기술 후진국이었던 독일은 프랑스를 추월, 기술대국의 반열에 올랐고 스위스는 시계산업 등 근대공업의 기반을 다졌다. 18세기 초 미국에 정착한 위그노들이 전수한 탄약기술은 미국 서부개척시대를 가능케 한 원동력이 됐다는 분석도 있다
위그노 엑소더스의 결정판은 영국이다. 당시 영국의 찰스 2세는 위그노를 받아들이는 특별이민법을 제정해 수많은 위그노 기술자의 영국 정착을 도왔다고 한다. 참여정부 첫 정보과학기술보좌관을 지낸 김태유 서울공대 교수는 “위그노 기술자들이 증기기관의 기반기술을 개발하고, 이것이 식민지 시장 개척, 중상주의에 의한 자본축적과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면직공업의 기틀을 다졌다”고 평가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식민지 개척과 자본축적에만 몰두한 데 비해 영국은 기술발전까지 추구하면서 산업혁명의 방아쇠를 당겼다는 것이다. 영국이 세계 패권을 잡는 데 숨은 공로자가 바로 위그노인 셈이다. - 출처:  http://www.etnews.co.kr/news/detail.html?id=200710310224

 
위그노에 대한 역사적인 사건들
16세기 초부터 프랑스에서 확산된 교회개혁운동은 정부의 탄압으로 많은 망명자를 낳았는데, 1559년 파리에서 열린 프로테스탄트교회회의에서 칼뱅파의 의견을 많이 반영한 신앙고백이 성립되었다.   
 즉, 1517년 독일에서 종교개혁이 시작된 후
마르틴 루터의 저작물들이 유럽에 널리 유포되었으며 프랑스에서도 개혁운동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프랑스의 프로테스탄트는 시작부터 박해를 받았으며 최초의 순교자가 1523년 화형에 처해졌다. 1534년 10월 가톨릭 미사의식을 맹렬히 공격하는 플래카드가 거리와 왕궁에서 발견되자 가톨릭 세력은 큰 충격과 함께 위기의식을 느꼈다. 이와 더불어 장 칼뱅을 포함한 많은 프로테스탄트들이 피신해야만 했다. 그럼에도 프랑스에서 프로테스탄티즘은 계속 확산되었으며 곧 귀족들 가운데서도 지지자가 생겨났다. 프로테스탄트에 대한 박해도 계속되었으며 1명씩 처형되던 관행이 대량학살로 비화했다. 앙리 2세 치하에서는 대개의 감옥이 위그노들로 가득 찼다. 이후 1562년 3월 1일 바시의 학살이 발단이 되어 위그노전쟁이 일어났다.

  특히 1572년 성바르톨로메오의 학살 때는 많은 사망자가 나왔는데 위그노의 주요인물 거의 모두가 파리에서 목숨을 잃었으며 나머지 지역에서도 수천 명이 학살당했다. 이 학살사건 이후 전쟁이 다시 시작되었으며 1574년 샤를 9세의 뒤를 이어 즉위한 앙리 3세 치세기에는 잠깐 동안을 제외하고 전쟁의 연속이었다. 1589년 앙리 3세가 암살된 후 그의 뒤를 이어 즉위한 앙리 4세는 프로테스탄트였으나 1593년 7월 가톨릭으로 개종함으로써 비로소 왕국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었다.

  1598년 4월 13일 앙리 4세가 위그노의 신앙 자유를 보장하는 이른바 '낭트칙령(勅令)'의 발표로 전쟁이 일단 종결되었다. 그러나 루이 14세는 절대군주제를 근간으로 하는 프랑스의 통일을 원하여 1598년의 '낭트칙령'을 파기하였다. 이후 프랑스 국내에서 지하운동을 계속한 신자도 있었으나 국외로 도피한 자도 많았는데, 프랑스 혁명 때까지는 그들의 자유를 회복할 수 없었다. - 출처 : http://mtcha.com.ne.kr/world-term/france/term19-wigno.htm


 
 책에서는 완전히 옳다라고는 얘기할 수 없지만, 위그노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은 다음과 같았다.
프랑스의 해상세력을 강화시킬 수 있었던 가장 큰 원인은 위그노이다. 이들은 사략선을 가지고 있어 비스케 만의 에스파냐 선박을 효과적으로 약탈할 수 있었다. 가톨릭 집단들이 개신교도 제한을 추진하면서 위그노들을 괴롭혔다. 그러나, 루이 14세와 중상주의 정책을 추진하였던 콜베르는 교역과 해운에서 그렇게 하는 것을 꺼렸다.
 위그노들은 콜베르가 죽고난 뒤에 더욱 더 처지가 좋지 않았는데, 그들 중 다수가 현찰과 기술을 챙겨 이주하였다. 이 때문에 위그노가 프랑스 경제에 많은 손해를 미쳤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당시 이주한 위그노와 프랑스에 남아있던 위그노들과 서로 네트워크로 연계되어 무역 확장에 기여한 것으로도 보인다.  

 전반적으로 위그노는 기술자 혹은 지식인들의 집단으로 보인다. 기술로 사회의 많은 문제를 해결하고 나라의 발전에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에 눈에 띄인 것 같다. 하지만, 차별적인 정책으로 인해 그 기술이 외국으로 나가게 되는 수순을 밟은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도 기술자 집단에 대한 처우가 좋지 않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현재 대한민국의 발전에는 기술자 집단의 힘이 굉장히 컸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로 기술쇠퇴와 경제쇠퇴의 길을 가고 있지는 않은지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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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cogist
오늘은 왠지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싶은 날이었다. 그냥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어도 좋을 것 같았다.
조금은 몸이 안 좋았던 것 같다. 속이 약간 더부룩한 느낌이 지속되는 듯한 느낌.
메신져를 들여다 본다. 그래도 선뜻 대화하기가 두렵다. 왠지 일을 하는 데 방해하는 것 같아 싫어진다.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상대를 찾아 말을 걸어본다. 어색한 느낌.. 뭔가 벽이 있는 것 같다. 외롭다..
메신져로 대화를 하면 그런 느낌이 더 강한 것 같다. 메신져로 쓰는 글이 아니라 대화가 필요한 것 같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기 짝이 없다. 내가 바쁠 땐, 누가 말 거는 것 조차 귀찮더니,
조금이라도 한가해지면 누구와 대화를 하고 싶어한다.

강해지고 싶다는 욕구가 또 솟구쳐 오른다. 이 욕구가 강해질수록 몸을 혹사시키곤 했었다.
잠을 안자고 무언가에 몰두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결국 몸이 지쳐 얼마가지 못하고 제자리 걸음을 하고 만다.
목표가 없었기 때문일까, 의지가 부족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둘 다 부족했던걸까
이제는 꾸준함이 정답이라는 걸 알고 있다. 예전처럼 몸을 힘들게하면 오래 못 갈 것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은 언제나 부족하다. 그래서 지적인, 육체적인 욕구는 계속 나를 혹사하게 만든다.
같은 시간에 포기할 것은 포기해야 하는데, 순간적인 쾌락을 쫓고,
시간을 두고 오랫동안 계속해야할 일을 조금씩 포기해가는 것이다.
항상 머릿속에서는 '이러면 안돼는데...'라는 자조적인 외침뿐이다.

다시 마음을 다잡아본다. 내가 하고 싶어하는 일들을 잊고 지낸 시간들을 다시 떠올려본다.
눈으로 자꾸 확인할 수 있도록, 책상 앞에 할 일들을 적어놔야겠다.
머릿속에 있는 생각들은 다른 생각이 조금만 들어와도 날라가버린다.
생각이 달아나지 않도록 잡아놔야한다.

오늘은 새학기가 시작하는 첫 날이다. 지금은 직장인이 되어 새학기에 대한 기분이 없지만,
학교다닐 땐 새학기에는  또 다른 사람이 되길 꿈꾸며 열심히 살자 다짐했었던 것 같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사람처럼 자꾸 잊지 말고 나의 다짐들을 자주 되새김질 해보자.
작심삼일을 3일에 한 번씩 하면 꾸준히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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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cog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