經濟2010/03/04 14:02
위그노는 누구인가? 요즘 읽고 '경제강대국 경제흥망사 1500-1900'를 읽으면서 잘 모르는 용어가 나와 정리해보았다.
위그노(Huguenot) 프랑스의 개신교 신자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칼뱅주의를 추종한 프랑스 개신교 신자들은 스위스 주네브에서 세력을 규합하는데, 후에 이들을 프라이부르크, 베른, 제네바의 동맹이라는 뜻으로 위그노라고 불렀다. 1562년 위그노 전쟁, 1572년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 학살 등으로 로마 가톨릭 교도들과 갈등을 겪었으며, 교리적으로도 혼란을 겪었다. 부의 정당한 축적을 인정한 칼뱅주의의 특징상 주로 상공업자 중에서 신도가 많았다. 루이 14세가 낭트 칙령을 폐기하자, 수많은 위그노들이 네덜란드, 영국, 프로이센 등지로 망명하였다. 일부는 미국 (현재의 뉴욕과 캐롤라이나지역)으로 건너가기도 했다.
(출처 : 위키백과 http://ko.wikipedia.org/wiki/%EC%9C%84%EA%B7%B8%EB%85%B8#cite_note-0)


위그노에 대한 지식이 없어 어떤 사람들이었을지 떠오르지 않아, 기사를 보니 다음과 같은 평가가 있었다.
위그노는 당대 최고의 기술자이자 엔지니어들이었다. 신교의 상공업 숭상주의 덕분에 위그노들은 일찌감치 제철·염료·화학 등 하이테크 분야에서 진면목을 발휘했다. 정치적인 박해를 피해 유럽 곳곳에 퍼진 위그노들 덕분에 기술 후진국이었던 독일은 프랑스를 추월, 기술대국의 반열에 올랐고 스위스는 시계산업 등 근대공업의 기반을 다졌다. 18세기 초 미국에 정착한 위그노들이 전수한 탄약기술은 미국 서부개척시대를 가능케 한 원동력이 됐다는 분석도 있다
위그노 엑소더스의 결정판은 영국이다. 당시 영국의 찰스 2세는 위그노를 받아들이는 특별이민법을 제정해 수많은 위그노 기술자의 영국 정착을 도왔다고 한다. 참여정부 첫 정보과학기술보좌관을 지낸 김태유 서울공대 교수는 “위그노 기술자들이 증기기관의 기반기술을 개발하고, 이것이 식민지 시장 개척, 중상주의에 의한 자본축적과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면직공업의 기틀을 다졌다”고 평가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식민지 개척과 자본축적에만 몰두한 데 비해 영국은 기술발전까지 추구하면서 산업혁명의 방아쇠를 당겼다는 것이다. 영국이 세계 패권을 잡는 데 숨은 공로자가 바로 위그노인 셈이다. - 출처:  http://www.etnews.co.kr/news/detail.html?id=200710310224

 
위그노에 대한 역사적인 사건들
16세기 초부터 프랑스에서 확산된 교회개혁운동은 정부의 탄압으로 많은 망명자를 낳았는데, 1559년 파리에서 열린 프로테스탄트교회회의에서 칼뱅파의 의견을 많이 반영한 신앙고백이 성립되었다.   
 즉, 1517년 독일에서 종교개혁이 시작된 후
마르틴 루터의 저작물들이 유럽에 널리 유포되었으며 프랑스에서도 개혁운동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프랑스의 프로테스탄트는 시작부터 박해를 받았으며 최초의 순교자가 1523년 화형에 처해졌다. 1534년 10월 가톨릭 미사의식을 맹렬히 공격하는 플래카드가 거리와 왕궁에서 발견되자 가톨릭 세력은 큰 충격과 함께 위기의식을 느꼈다. 이와 더불어 장 칼뱅을 포함한 많은 프로테스탄트들이 피신해야만 했다. 그럼에도 프랑스에서 프로테스탄티즘은 계속 확산되었으며 곧 귀족들 가운데서도 지지자가 생겨났다. 프로테스탄트에 대한 박해도 계속되었으며 1명씩 처형되던 관행이 대량학살로 비화했다. 앙리 2세 치하에서는 대개의 감옥이 위그노들로 가득 찼다. 이후 1562년 3월 1일 바시의 학살이 발단이 되어 위그노전쟁이 일어났다.

  특히 1572년 성바르톨로메오의 학살 때는 많은 사망자가 나왔는데 위그노의 주요인물 거의 모두가 파리에서 목숨을 잃었으며 나머지 지역에서도 수천 명이 학살당했다. 이 학살사건 이후 전쟁이 다시 시작되었으며 1574년 샤를 9세의 뒤를 이어 즉위한 앙리 3세 치세기에는 잠깐 동안을 제외하고 전쟁의 연속이었다. 1589년 앙리 3세가 암살된 후 그의 뒤를 이어 즉위한 앙리 4세는 프로테스탄트였으나 1593년 7월 가톨릭으로 개종함으로써 비로소 왕국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었다.

  1598년 4월 13일 앙리 4세가 위그노의 신앙 자유를 보장하는 이른바 '낭트칙령(勅令)'의 발표로 전쟁이 일단 종결되었다. 그러나 루이 14세는 절대군주제를 근간으로 하는 프랑스의 통일을 원하여 1598년의 '낭트칙령'을 파기하였다. 이후 프랑스 국내에서 지하운동을 계속한 신자도 있었으나 국외로 도피한 자도 많았는데, 프랑스 혁명 때까지는 그들의 자유를 회복할 수 없었다. - 출처 : http://mtcha.com.ne.kr/world-term/france/term19-wigno.htm


 
 책에서는 완전히 옳다라고는 얘기할 수 없지만, 위그노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은 다음과 같았다.
프랑스의 해상세력을 강화시킬 수 있었던 가장 큰 원인은 위그노이다. 이들은 사략선을 가지고 있어 비스케 만의 에스파냐 선박을 효과적으로 약탈할 수 있었다. 가톨릭 집단들이 개신교도 제한을 추진하면서 위그노들을 괴롭혔다. 그러나, 루이 14세와 중상주의 정책을 추진하였던 콜베르는 교역과 해운에서 그렇게 하는 것을 꺼렸다.
 위그노들은 콜베르가 죽고난 뒤에 더욱 더 처지가 좋지 않았는데, 그들 중 다수가 현찰과 기술을 챙겨 이주하였다. 이 때문에 위그노가 프랑스 경제에 많은 손해를 미쳤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당시 이주한 위그노와 프랑스에 남아있던 위그노들과 서로 네트워크로 연계되어 무역 확장에 기여한 것으로도 보인다.  

 전반적으로 위그노는 기술자 혹은 지식인들의 집단으로 보인다. 기술로 사회의 많은 문제를 해결하고 나라의 발전에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에 눈에 띄인 것 같다. 하지만, 차별적인 정책으로 인해 그 기술이 외국으로 나가게 되는 수순을 밟은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도 기술자 집단에 대한 처우가 좋지 않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현재 대한민국의 발전에는 기술자 집단의 힘이 굉장히 컸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로 기술쇠퇴와 경제쇠퇴의 길을 가고 있지는 않은지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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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cogist
日記2010/03/02 23:01
오늘은 왠지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싶은 날이었다. 그냥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어도 좋을 것 같았다.
조금은 몸이 안 좋았던 것 같다. 속이 약간 더부룩한 느낌이 지속되는 듯한 느낌.
메신져를 들여다 본다. 그래도 선뜻 대화하기가 두렵다. 왠지 일을 하는 데 방해하는 것 같아 싫어진다.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상대를 찾아 말을 걸어본다. 어색한 느낌.. 뭔가 벽이 있는 것 같다. 외롭다..
메신져로 대화를 하면 그런 느낌이 더 강한 것 같다. 메신져로 쓰는 글이 아니라 대화가 필요한 것 같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기 짝이 없다. 내가 바쁠 땐, 누가 말 거는 것 조차 귀찮더니,
조금이라도 한가해지면 누구와 대화를 하고 싶어한다.

강해지고 싶다는 욕구가 또 솟구쳐 오른다. 이 욕구가 강해질수록 몸을 혹사시키곤 했었다.
잠을 안자고 무언가에 몰두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결국 몸이 지쳐 얼마가지 못하고 제자리 걸음을 하고 만다.
목표가 없었기 때문일까, 의지가 부족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둘 다 부족했던걸까
이제는 꾸준함이 정답이라는 걸 알고 있다. 예전처럼 몸을 힘들게하면 오래 못 갈 것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은 언제나 부족하다. 그래서 지적인, 육체적인 욕구는 계속 나를 혹사하게 만든다.
같은 시간에 포기할 것은 포기해야 하는데, 순간적인 쾌락을 쫓고,
시간을 두고 오랫동안 계속해야할 일을 조금씩 포기해가는 것이다.
항상 머릿속에서는 '이러면 안돼는데...'라는 자조적인 외침뿐이다.

다시 마음을 다잡아본다. 내가 하고 싶어하는 일들을 잊고 지낸 시간들을 다시 떠올려본다.
눈으로 자꾸 확인할 수 있도록, 책상 앞에 할 일들을 적어놔야겠다.
머릿속에 있는 생각들은 다른 생각이 조금만 들어와도 날라가버린다.
생각이 달아나지 않도록 잡아놔야한다.

오늘은 새학기가 시작하는 첫 날이다. 지금은 직장인이 되어 새학기에 대한 기분이 없지만,
학교다닐 땐 새학기에는  또 다른 사람이 되길 꿈꾸며 열심히 살자 다짐했었던 것 같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사람처럼 자꾸 잊지 말고 나의 다짐들을 자주 되새김질 해보자.
작심삼일을 3일에 한 번씩 하면 꾸준히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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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cogist
日記2010/02/19 01:00
회사일이 잘 안풀리니 답답하다.
항상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라면 괜찮겠는데, 문제가 나타났다. 나타나지 않았다가 하는 데,
어디서 부터 포인트를 잡아야할지 잘 모르겠다.
지금까지 해오던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
하긴 지금까지의 문제 풀이 방법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감각적으로 느끼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방법이 잘 생각나지는 않는다.
모듈화가 되어있지만 코드가 많이 겹쳐져 운영이 되기에 전체 모듈을 다 따라다녀야 하는 데,
그쪽 코드에 대한 지식이 적어서 더 고생하고 있는 것 같다.
확실히 파악을 해야할 것 같은데, 시간이 발목을 잡는다.
그래 지금까지 생각한 거로 된거야! 이러고는 회사에서 나와 버렸다.
그리고는 버거킹에서 햄버거와 어니언 링을 먹고 코트로 달려나갔다.

오랜만에 보는 용석이, 준혁이형, 성희형, 자주 농구같이 하는 동윤이형, 잘 모르는 분 이렇게 바스켓 슛타임 사람들과 영태형과 나 이렇게 용병으로 다른 팀 시합을 뛰었다.
상대팀은 다운타운이라는 팀인데, 상대가 키도 크고 힘도 좋았다.
특히 선수출신 사람들이 몇 명 있었는데, 거의 막을 수가 없었다.
특히 센터로 뛰시는 무지막지하게 생기신 분은 힘이 너무 좋아서 인사이드에서는 밀어내고 싶어도
밀어낼 수가 없었고, 오히려 내가 밀다가 튕겨나가게 되었다.
그리고 상대편 사람이 심판이라서 그런지 상대의 반칙에는 휘슬을 거의 불지 않았고
우리 팀의 파울에는 휘슬이 자주 나가는 것으로 보였다.
이런 저런 불리한 점에도 불구하고 1게임은 이기고, 한 게임은 거의 이기고 있다가 막판에 역전.
마지막 게임은 체력이 다 빠져서 제대로 뛰지 못해 지고 말았다.
몇 번 파울을 좀 심하게 당해서, 코도 좀 아팠고, 종아리도 무릎에 찍혀 약간 놀랬고, 무릎을 맞아 무릎에 멍도 들긴 했는데 그래도 크게 다치지 않아 다행인 것 같다.
무엇보다도 몇 골 넣지 못했지만, 수비도 잘 되고 공격도 꽤 잘 풀어가면서 재미있게 뛴 것 같다.
우리 팀이 이렇게 잘 뛰어주면 얼마나 좋을 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2시간 반을 한 3~4쿼터 정도 빼고는 거의 1시간 반을 다 뛰었다.

다 뛰고 나와서 동윤이형 차를 타고 오는데, 모든 출구가 막혀 초등학교에 갇히는 사태가 발생했다.
경비아저씨 찾아다니고 학교에 전화도 하고 했는데, 경비아저씨를 찾을 수가 없어
정문이 열려 있길래 그곳으로 차를 억지로 끌고 갔다.
연석을 넘어야 하는데, 차가 낮아 살짝 긁혔다. 동윤이형이 괜찮은 척 했지만, 꽤나..마음아파 하는 것 같았다.ㅋ
정문에 화분이 몇 개 있었는데, 차가 나갈 수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옆으로 밀쳐냈는데, 생각보다 꽤 무거웠다.
겨우겨우 밀어내고 나오는 데 경비아저씨가 어떻게 이럴수가 있냐며.. 대뜸 화를 내셨다.
자기한테 열어주면 되는데 왜 이렇게 넘어가냐고...
그래서 이런저런 사정을 말씀드리고는 화분을 다시 제자리로 옮기고 집으로 돌아왔다.

내일은 결혼하신 선배 집들이 가야하고, 모레는 훈련소에서 만난 동은이가 결혼하는 날이라서 결혼식장에 가야한다.
일정이 좀 빠듯한 것 같은데, 내일만 지나면 주말이라 왠지 모르게 설레인다. 그닥 할 일도 없는 데 말이다.
내일은 문제가 잘 정리되고, 풀렸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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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cogist
日記2010/02/18 01:27
할 일이 많아졌다. 회사 일이 없어보였는데, 점점 압박해오고..
농구도 해야하고,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도 읽어줘야하고, 영어공부도 해야하고..
이렇게 할 일이 너무 많으면 오히려 다 잊고 다른 걸 하고 싶게 된다.
이상한 심보다 정말...
설날에는 폐인 생활하고.. 이제야 좀 정신차려 가고 있는 건가.
마음이 좀 힘들었는데, 그 휴우증이 꽤 남아있는듯 하다.
정신차려야지 차려야지 하면서 정신 못차리고 있는거 같다.
체력은 조금 관리 안해주면 마치 늪과 같이 아래로 아래로 내 몸을 잡아 끄는 것 같고..
너무 일을 벌려놓은 것 같다. 적당히 자를 것들은 잘라내야지.
앞으로는 글도 자주 써야겠다. 시간도 많아졌으니,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에 좀 더 할애 해볼까한다.
물론 항상 다짐뿐인 공허한 메아리가 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하다가 보면 잘 되겠지~ 자자~ 자고 일어나서 다시 내일도 열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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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cogist
斷想2010/01/30 01:35

 공부(工夫) 의 어원 

"공부(工夫)"만큼 우리 인생을 괴롭히는 일은 없고 공부만큼 우리 인생을 괴로움으로부터 해탈 시켜주는 것이 없다.흔히 공부란 학문을 배우고 익히는 것만으로 알고 있다. 공부의 유래는 불교에서 말하는 주공부(做工夫)에서 비롯된다. "공부를 하다."함은 "불도 (佛道)를 열심히 닦는다."의 뜻이다. 불도를 닦는 데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특히 공부라는 용어를 즐겨 쓰는 수행법은 참선(參禪)이다. 그래서 선가(禪家)에서는 참선에 진력하는 것을 "공부한다."라고 말했다.

 며칠 전 TV에서 어떤 강연자가 '공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운동이 공부보다 힘들다. 운동은 자기와의 싸움이다." 라는 말을 듣고 귀에 거슬리는 느낌을 받았다. '운동을 하는 것도 공부가 아닌가?', '공부는 그냥 우리가 어린 시절 배웠던 수학, 영어, 국어.. 등등의 학문을 배울 때에만 쓰는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공부라는 단어의 어원을 찾아보았다. 공부라는 단어가 불교에서 유래한 단어인 것은 처음 알았다. 예상대로 공부라는 것은 단순히 학문을 배우고 익히는 것이 아닌 무엇인가를 이해하고 익숙해지기 위해 필요한 노력을 뜻하는 말이다. 
 예전에 어떤 저자가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라는 책을 썼었다. 하지만 나는 이 문장이 꽤 맘에 들지 않았다. 어떻게 자기가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서 노력하는 일이 가장 쉽다는 표현을 했을까? 이것은 내가 공부라는 것은 학문을 아는 것만의 의미가 아님을 알고 있어서 였을 것이다. 우리가 어떤 것을 이해하고, 익숙해지거나 문제를 풀어내는 것, 단순히 아는 것만을 넘어 이러한 것들이 모두 공부에 포함되는 것이다. 지금은 물론 '공부'의 의미가 저런 의미가 아닌 단순히 학문을 배우는 것으로 한정되어 쓰이고 있다. 물론 그러한 점에 대해서 위의 저자가 알고 있었을 것이다. 공부가 가진 원래의 의미에서 나는 공부라는 것이 쉽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그것을 이해하고 능숙하게 다루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마치 운전을 어떻게 하는 것인지 알고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차를 많이 몰아봐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또 그렇기 때문에 더욱 그것을 알아갈 때 재미있고 꾸준히 연마해야 하는 것이다.
  단순히 학문을 배우는 것을 넘어 요리, 생활 습관, 운동 등등 그것들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가고 능숙해 지려고 노력할 때 우리는 공부를 하는 것이다. 상식을 벗어나는 이론, 문제에 대한 완전한 이해, 그것을 알게 되었을 때의 느껴지는 카탈리시스, 이런 것들이 공부를 흥미롭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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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cog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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